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음.
책을 읽고자하는 나에게 책 값은 너무 비싸다.
물론 책을 사는 비용이 아깝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저 백수라 그렇다.
나에게 전자도서관은 매우 기꺼운 정책이다.
아직은 종이로된 손으로 넘기는 맛이 있는 종이책이 좋지만 전자책도 나에겐 훌륭하다.
눈이 피로하지 않게 블루라이트 차단 안경만 있으면 확실하게 더 좋다.
스마일 라식을 하고 나서 블루라이트 차단 안경이 없으면 너무 눈이 피로하다.
모든 현대인에게 하나쯤은 꼭 추천한다.
아무튼간에 좋은 기회로 무료 전자책을 이용할 수 있다
시립도서관은 책을 얼마나 보유할지 모르겠지만, 나의 고향은 인원이 10만명조차 턱없이 부족한 군이라 책이 다양한 편은 아닌것 같다.
유명한 베스트셀러정도를 읽을 수 있을 정도. 이정도도 감사하다.
파친코를 읽기 전에 이미 유명한 베스트셀러이기에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에서 거주하는 한국인의 핍박받는 삶에 대해 다루는 책, 차별받는 한국인들은 파친코와 관련한 인식이 좋지않은 생계수단을 가지게 되기에 이러한 점을 다루는 소설이라고 대충 어디서 보고 읽어봐야겠다 싶어서 읽기 시작했다.
나는 일본도 좋아하는 편이고 일본어도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이자 한 때는 일본인들과 같이 스마트폰 게임도 즐겼던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한국에서 일제강점기를 비롯한 한국사를 배운 사람이기도 하다. 물론 내가 겪지는 않았지만.
파친코를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은 본능적인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나의 외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은 분이다. 물론 아직 살아계신다.
자식 두 명을 잃으셨다.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른다. 아마 일제강점기는 아닌 것 같고 한국 전쟁쯤 같다. 나는 이러한 이야기를 잘 듣지 못했다.
파친코를 읽으면서 우선 파친코 이야기가 없다. 파친코는 나중에 등장한다. 처음부터 등장할 줄 알았는데 없더라.
파친코를 읽기 전에 일본에서 거주하는 한국인, 차별받는 한국인이라고 보고 읽었다. 뭐 어떻게 보면 한국인도 맞다. 그런데 꼭 한국인이라고 할 수도 없다. 따지고보면 조선인과 조선계일본인인가? 잘 모르겠다. 정체성이 혼란스럽다.
혼란스러운 시기에 당사자들은 얼마나 혼란스러웠을까. 난 예/아니오로 정해지는 답이 있는 문제를 좋아하는데, 이런 혼란스러운건 어렵다. 이분법적 사고가 주였던 나는 혼란스럽다.
노아가 자살했을 때가 제일 당황스러웠다. 성격 진짜 대쪽같다.
노아는 와세다 대학을 나와 조선인으로 일본에서 성공하고 싶었던 사람이다. 노아는 자신의 아버지의 백이삭을 존경하는 사람이다. 노아의 생물학적 친아버지는 고한수다. 여기까지는 내가 글을 제대로 이해하며 읽은 것 같다.
와세다 대학을 진학할 때 노아를 후원한 것은 고한수다. 여기까지도 이해했다.
노아가 본인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백이삭이 아니고 고한수인 것을 깨달았고 선자에게 배신감을 느끼며 연을 끊고 타지로 떠났다. 여기까지는 스토리 라인은 따라갔지만 제대로 이해는 못했던 것 같다.
나중에 노아가 와세다 대학을 다니는 것을 후원하는 고한수를 아버지라고 생각하지는 못했지만, 은연 중에 어느정도는 직감이자 본능으로 어렴풋이 알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보았다.
이런 관점을 보고 노아의 죽음이 왜 그러했는지 이해가 조금씩 가기 시작했다.
왜 노아가 조선인으로 일본에서 성공한 사람이 되지 않고 일본인인 반 노부오로 살아갔는지.
처음에는 반 노부오로 살아가는 이유가 그냥 조선인인 것을 드러내면 취업의 길이 막혀 생계가 어렵기 때문에 일본인 이름으로 사는 건가 했다.
백이삭을 존경하고 고한수를 증오하는 노아가 와세다 대학을 그만 둔 이유도 고한수 때문이 아닌가
백이삭의 아들 백노아라는 이름은 노아의 정체성이다.
백노아는 성격이 대쪽같다. 조선인으로 와세다 대학을 합격했다. 친아버지가 고한수인 것을 알고 그렇게 바라던 대학을 중퇴했다. 사랑하는 가족과 연을 끊었다.
조선인으로 와세다 대학을 진학한 성공한 조선인으로 사는 일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파친코에서 종사하는 조선인으로 남고 싶지 않기에 반 노부오인 일본인으로 남고자 했다는 것을 알고 나서 얼마나 기가 차던지.
맘에 든다. 백노아. 그 대쪽같은 성격이.
그 와중에 아무 일본 이름이 아니고 백이삭이 지어준 이름인 백노아를 일본어로 그냥 사용한게 마음에 든다.
반도 노부오가 일본 이름이지만 반도를 쓰면 조선인인게 티가 나니까 반도를 반으로 쓴건 어쩔 수 없이 타협한 것 같다.
그래도 타협하면서라도 반 노부오로 살아가는 기개가 마음에 든다.
그래도 몇 십년만에 찾아온 자신의 어머니인 선자를 만나고 나서 자살한 건 니가 잘못했다.
기개 있는건 좋지만, 선자는 내가 찾아가서 내 아들이 죽었구나하고 마음이 찢어질텐데 너무 심했다.
물론 읽으면서 고한수랑 노아한테???라는 생각으로 선자가 그러지 않길 바랐지만, 니가 심했다 노아야.
선자는 고한수의 도움을 받고 싶지 않아하는데, 얼마나 노아가 소중하고 보고싶으면 고한수의 도움을 받았을까 싶기도하고 도움을 받으면서 무력감을 느낄 선자도 안타깝다.
가장 많이 느끼는 안타까움은 이러한 시대상이라는 점이다.
노아도 지금 현대에 태어났으면 그냥 일요일에 교회가기 귀찮아하는 금쪽이 노아였을지도 모른다.
노아를 비롯하여 많은 등장인물들이 처한 안타까운 시대상이 우울감을 느끼게 한다.
노아와 모자수는 일본으로 넘어간 조선인들의 바로 다음 세대이기에 필연적으로 맞닥뜨리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모자수의 아들인 솔로몬은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아직도 일본에서 일본인으로 살 수 없어 발생하는 문제들을 보여준다.
이런 점이 더욱 심한 우울감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이외에도 하룻밤을 판매하는 여성들과 가축들과 같이 생활하는 조선인 구역 등 이 소설에서 우울하지 않을 부분은 없다.
가장 행복한 이야기는 선자와 선자의 아버지 훈이 그리고 선자의 어머니 양진 이 세명이 오손도손 살아갈 때가 아닐지싶다.
파친코의 마지막에 다다르다보면 선자의 아버지인 훈이를 떠올리는 장면이 있는데 그 때 만큼은 마음이 편안했다.
자신의 배우자인 양진과 딸인 선자를 끔직하게도 아끼는 훈이를 볼 때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렇게 훈훈할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고나서 우선 타인에게 추천해 줄만하다. 물론 허울없이 모든 이야기를 거리낌없이 할 수 있는 친한 사람들한테만. 아니면 아예 모르는 사람이면 가능할 것 같다. 애매하게 아는 사이거나 비지니스 관계라면 비추천. 성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책 전반적으로 우울감이 깊다.
글 자체는 지루할 틈이 없고 매우매우 잘 읽히는 편에 속한다. 잘써진 글 중에서도 유난히 잘 읽히는 글이 있다. 바로 이 글이 그 중 하나다. 맥락상 어려운 부분도 크게 없다. 가장 난관은 '노아가 왜 죽었는가'이다. 이 부분만 통과하면 당신도 이제 파친코 척척박사.